1.
숏츠나 한문철의 블랙박스 속 사고 영상을 볼 때마다 자꾸 걸리는(?) 포인트가 있다.
한쪽은 명백히 법을 위반했다.
그런데 다른 한쪽도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물론, 위반은 아니다. 하지만 무신경하다.
조심할 수 있었는데 조심하지 않는다.
피할 수 있었는데 그대로 밀고 간다.
위험한 낌새가 보이는데도 멈칫하거나 움츠러들지 않는다.
그런데 댓글은 대개 한쪽으로만 쏠린다.
"쟤가 법을 어겼잖아."
"블박차는 위반한 게 없잖아."
"그러면 상대가 가해자지."
맞다. 위반한 쪽이 법적으로는 잘못한 것이 맞다.
하지만 그 말이 곧, 위반하지 않은 쪽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2.
한문철 블랙박스식 콘텐츠의 흐름은 대체로 이렇다.
"누가 도로교통법을 위반했는가."
"과실 비율이 몇 대 몇인가."
"누가 더 가해자인가."
사고 처리나 법적 판단에서는 필요한 질문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거기서 멈춘다는 것이다.
과실 비율이 정해지는 순간, 판단은 법의 테두리에 갇힌다.
"상대 과실이 더 높으니 상대가 나쁜 놈이다."
"내 과실이 더 낮으니 나는 피해자다."
"나는 법을 어기지 않았으니 당당하다/잘못이없다."
하지만 법은 최소 기준이다.
그 선을 넘지 않았다고 해서, 내 행동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규칙은 인간 행동의 최소 기준이지, 최대 기준이 아니거든.
3.
예를 들어 이런 운전자가 있다.
"나는 법을 어기지 않은 상태이니, 굳이 더 조심하지 않는다."
"위험한 낌새가 보이지만, 상대가 위반한거니 양보하거나 물러서지 않는다."
사고를 예방하려 하기보다 "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식으로 밀고 나간다. 그리고 사고가 나면 이렇게 말한다.
"쟤가 명백히 위반했잖아."
"저걸 어떻게 피해? 불가항력이잖아."
"내가 뭘 더 조심했어야 하는데?"
하지만 완전한 불가항력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부분의 위험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속도를 조금 줄였더라면, 시야를 조금 더 넓게 봤더라면, 상대의 이상한 움직임을 조금 더 일찍 감지했더라면, 애초에 그 상황 안으로 깊이 휘말리지 않았을 수 있다.
'불가항력'이라는 말은 때로, 무신경함을 감추는 변명이 된다.
4.
상대가 위반한 것은 맞다.
하지만 상대가 위반했다는 사실이, 내가 무신경해도 된다는 '허가증'이 되지는 않는다.
상대가 더 잘못했다고 해서, 내 행동이 자동으로 괜찮아지는 것도 아니다.
법적으로 걸리지 않았다고 해서, 인간적으로 당당해지는 것도 아니다.
핵심은 과실 비율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법적 위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자기 행동을 돌아볼 필요조차 없다고 여기는 태도"다.
이런 사람은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하지 말라는 것만 안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법에 안 걸리면 문제없다."
"상대가 더 잘못했으면 나는 피해자다."
"규칙상 내가 틀린 게 없으면 더 볼 것도 없다."
이건 주체적인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처벌 기준에 종속된 태도다.
이런 태도는 일종의 노예정신이다.
5.
노예정신이라는 말이 거칠게 들릴 수는 있다.
하지만 본질은 분명하다.
- 자기 판단을 하지 않는 태도.
- 자기 행동을 돌아보지 않는 태도.
- 규칙이 금지한 선까지만 보고 움직이는 태도.
- "금지된 것만 안 했으면 나는 문제없다"고 믿는 태도.
그 반대편에 있는 것은 뭐 그리 대단한 도덕성이 아니다.
그냥 주체적 판단이다.
"내가 이 상황을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었는가?"
"내가 사고 가능성을 줄이는 쪽으로 행동했는가?"
"나는 상대를 이기려 했는가, 아니면 위험을 낮추려 했는가?"
"내가 법적으로는 무죄일지 몰라도, 인간적으로는 치사하게 군 것은 아닌가?"
"걸리느냐 안 걸리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더 나은 행동인가"를 보는 것이다.
6.
규칙이 금지한 선까지만 보고 움직이는 사람은,
법의 세계에서는 무죄일지언정
인간 세상에서는 치사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다.
법은 그 사람을 처벌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무신경했다는 사실,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었다는 사실,
자기 행동을 돌아보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문철 블랙박스식 콘텐츠를 볼 때마다 불편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겉으로는 사고를 분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가 몇 퍼센트 잘못했는지, 누가 가해자자고 누가 피해자인지에만 초점이 맞춰진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점점 이렇게 생각한다.
"내 과실이 더 낮으면 나는 피해자다."
"상대 과실이 더 높으면 나는 정당하다."
"상대가 위반했으니 이건 내가 어쩔 수 없는거다."
이게 바로 노예정신의 계산법이다.
"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말은 때론 가장 비겁한 자기합리화가 된다.
법의 세계에서 무죄인 것과
인간 세상에서 당당한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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