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사건의 재구성 (The Story)
신뢰가 가장 중요한 자리, 그 앞에서 느낀 '찝찝함'
모든 것은 '경영지원팀'의 새로운 동료를 찾는 과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단순 멤버 포지션이었지만, 지원자 '김지수'씨의 경력은 팀장급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경영지원팀은 회사의 규칙, 계약, 문화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기에, 우리는 실무 능력 이상으로 높은 수준의 정직성과 파트너십을 갖춘 인재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김지수 지원자는 면접에서 뛰어난 역량과 논리로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 긍정적인 평가와는 별개로, 면접관들 사이에서는 무언가 설명하기 힘든 미묘한 '찝찝함'이 남았습니다. 우리는 이 감정의 실체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심층 질문과 감탄을 자아낸 답변
우리는 그녀의 본질을 확인하기 위해, 회사의 업무 방식과 그녀의 성향을 의도적으로 충돌시키는 심층 질문을 이메일로 보냈습니다.
- 우리의 질문: "저희는 명확한 '정답'보다 여러 요소를 고려해 '최선의 답'을 찾아야 하고, 이 과정은 종종 '불충분한 정보 속에서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방식이 김지수 님 성향과 잘 맞을지, 어떤 어려움이 예상되는지 솔직한 생각을 들려주십시오."
그녀의 답변은 우리의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 '빠른 완결'의 재해석: 이를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응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리스크 관리 전략"이라고 논리적으로 설명했습니다.
- 주도적인 '필요조건' 제시: 성공적 업무 수행을 위해 "회사 전반에 대한 정보와 상황이 솔직하게 공유되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명확히 요구하며, 수동적 직원이 아닌 '파트너'로서의 관점을 보여주었습니다.
- 성숙한 협업 태도: "자존심보다 회사의 방향을 우선시하여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고 상의하겠다"고 밝히며, 고경력자의 경직성에 대한 우려를 스스로 해소했습니다.
우리는 그녀에게서 우리가 찾던 동료의 모습을 발견했고, 확신에 차서 연봉과 처우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을 담은 오퍼 메일을 발송했습니다. 특히, 그녀가 문의했던 휴가 및 유연근무에 대해서는 규정에 없음에도 흔쾌히 긍정적으로 제안하며 우리의 신뢰를 표현했습니다.
'연봉'이라는 마지막 퍼즐
우리의 제안에 대해, 김지수 지원자는 경영지원팀장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녀는 먼저 식대 및 주차 지원 여부를 확인했고,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우리가 제안한 연봉(4600~4700)이 본인의 직전 연봉(4800)보다 낮다는 사실에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며 재고를 요청한 것입니다. 우리 측은 "검토 후 연락드리겠다"고 답하며 통화를 마쳤습니다. 여기서부터 양측의 '동상이몽'이 시작되었습니다.
- 회사의 입장: 채용의 핵심 조건인 '연봉'에 대해 지원자가 이의를 제기했으므로, 기존 합격 제안은 '보류(Hold)' 상태로 전환되었다.
- 지원자의 생각: 연봉 협상은 합격 이후의 절차일 뿐, '합격' 상태는 여전히 유효하다.
엇갈린 가정과 드러난 모순
한 시간 뒤, 그녀는 다시 전화를 걸어 "내일 회사로 찾아가 총괄이사님과 직접 연봉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다"고 통보했습니다. 합격이 보류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을 직감한 우리는, 경영지원팀장을 통해 "연봉에 대한 이의 제기로 현재는 결정 보류 상태"라는 점을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회사에 찾아온 그녀는 여전히 자신을 '합격자' 신분으로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자신의 연봉 희망액이 타당하다는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습니다.
- "채용 플랫폼 시스템상 4000만 원대는 천만 원 단위로만 구간 설정이 가능해 4000~5000으로 적었을 뿐, 내 진짜 희망은 직전 회사 연봉인 4800 이상이었다."
- "면접 때 '맞춰주겠다'는 말을 듣고, 당연히 최소 4800 이상 보장으로 이해했다."
이에 대해 우리가 "겨우 한 차례 면접만 본 지금의 상황에선 4600과 4800 중 어느 쪽이 더 적절한지 논한다는건 불가능 아니냐?"고 지적하자 그녀는 수긍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그래도 이직할 때 연봉을 낮추는 경우는 잘 없지 않느냐" 그리고 "맞춰준다는 게 직전 연봉 얘기인줄 알았다" 며 관행과 자의적 해석을 내세워 본인 주장을 뒷받침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 모든 상황을 겪고 나니, 과거 그녀가 했던 긍정적인 발언들마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규정 외 혜택(연차, 유연근무)에 감사하다던 말의 진정성, 투명한 정보 공유를 요구했던 말의 숨은 의도까지. 우리는 회사의 근간을 책임져야 할 경영지원팀의 일원으로서 그녀가 과연 적합한지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2부: 핵심 문제 분석 (The Analysis)
위의 이야기에서 드러난 김지수 지원자의 진짜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특히 이 모든 문제점들은 회사의 규칙과 신뢰를 다루는 '경영지원팀'이라는 포지션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더욱 심각하게 다가옵니다.
문제 행동 및 드러난 모순 | 상세 분석: 이 행동이 왜 중요한 신호인가? |
1. '합격'의 의미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한 점 | 비즈니스에서 '합의'는 양측의 의사가 정확히 일치할 때만 성립합니다. 채용의 핵심 조건인 연봉을 거절한 순간 기존 합의는 깨진 것인데, 이를 무시한 것은 '함께 만들어가는 약속'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회사의 계약과 규정을 다루어야 할 경영지원팀 담당자로서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
2. '자신만의 사정'을 뒤늦게 꺼내 든 협상 태도 | 훌륭한 동료는 신뢰를 바탕으로 필요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며 함께 최적의 답을 찾아갑니다. 하지만 지원자는 협상이 불리해지자 그제야 숨겨둔 정보를 '카드'처럼 사용했습니다. 이는 투명한 소통이 아니라 '정보를 무기로 활용하는 전략적 행동'에 가깝습니다. 이런 성향은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의 책임을 가려야 할 때 정보를 공개할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
3. 스스로 동의한 내용을 스스로 뒤집은 점 | "데이터가 없다"는 논리적 기준에 동의하고도, 바로 '뜬소문'이나 '개인적 감상'을 근거로 주장을 반복한 것은 합리적인 대화의 규칙을 스스로 무너뜨린 것입니다. 이는 어려운 문제 앞에서 논리적 해결책을 찾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결론을 위해 기준과 원칙을 쉽게 바꾸는 사람이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
4. '주고받는 관계'에 대한 이해 부족 | 회사가 먼저 베푼 상당한 호의(규정 외 혜택)에 감사함을 표하면서도, 다른 조건에서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보상 조건을 '종합 선물 세트'가 아닌, 개별 전리품의 합으로 본다는 뜻입니다. 회사의 자원을 공정하게 관리해야 할 포지션에서 이러한 분절된 손익 계산은 매우 위험합니다. |
5. '정보 공유' 요구에 숨겨진 의도 |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나니, 과거 "정보가 투명하게 공유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다르게 해석됩니다. 이는 성공을 위한 요청이라기보다, 나중에 일이 잘못되었을 때 "정보를 제대로 안 줬기 때문에 내 책임이 아니다"라고 말하기 위한 '면죄부'를 미리 만들어 둔 것일 수 있습니다. '완벽한 조건'이 아니면 책임지지 않겠다는 태도입니다. |
3부: 교훈과 통찰 (The Takeaways)
이 케이스 스터디는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줍니다. 특히 회사의 기강과 문화를 책임지는 포지션일수록, 역량 뒤에 숨겨진 지원자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지원자가 자신의 가치를 어필하는 방식'을 유형별로 정리하고, 다른 HR 담당자들과 나눌 수 있는 글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교훈 1: 지원자가 자신의 가치를 어필하는 3가지 레벨
- Level 1: 기본 어필 (나의 '스펙'을 보여주는 단계)
- 자신의 경력, 성과, 연봉 등 객관적인 사실을 근거로 자신을 설명합니다.
- Level 2: 매력 어필 (나의 '생각'을 보여주는 단계)
- 자신의 업무 철학을 회사의 비전과 연결하여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 Level 3: 위험 신호 (나의 '욕심'을 드러내는 단계)
- 논리가 부족하거나 숨겨둔 의도를 드러내며 자기 이익을 관철시키려 합니다. (예: 내 맘대로 해석, 뒤늦게 카드 꺼내기, 부분 최적화, 책임 회피 장치 만들기 등)
교훈 2: 다른 HR 담당자들과 공유해봄직한 인사이트
제목: '완벽해 보였던 후보'가 마지막에 탈락한 진짜 이유
"최고의 인재인 줄 알았습니다." 스스로의 성향을 '리스크 관리 전략'이라 재해석하고, 성공을 위해 '투명한 정보 공유'를 당당히 요구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진짜 파트너'를 만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채용의 마지막 관문, 연봉 협상에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회사가 먼저 보여준 파격적인 유연근무와 휴가 제안에 "감사하다"고 말하던 그, 100만 원의 연봉 차이 앞에서 돌변했습니다.
그 순간, 과거에 그가 말했던 모든 멋진 말들이 다른 의미로 해석되기 시작했습니다. 채용은 함께 일할 '동료'를 찾는 여정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최종 협상 테이블이야말로, 이력서에는 결코 담을 수 없는 한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무대가 되곤 합니다.
🚨 이런 신호, 놓치지 마세요: '가짜 파트너'를 거르는 4가지 필터링 질문
- 불리할 때만 '숨겨둔 패'를 꺼내나요? "사실 제 진짜 뜻은...", "그때는 말 못 할 사정이..." 협상이 잘 풀릴 땐 침묵하다가, 불리해지는 순간에만 처음 듣는 이야기(자신만의 사정, 숨은 의도)를 꺼내 판을 흔드는 후보. 그는 투명한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요? 신뢰는 정보의 투명성에서 시작됩니다.
- '감사'는 제스처이고, '계산'이 본심인가요? 회사가 제공한 비금전적 '신뢰'와 '유연성'의 가치를 진심으로 인정하나요? 아니면, 모든 조건을 개별 부품처럼 분리해 각각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부분 최적화'의 함정에 빠져 있나요? "숲은 보지 않고 나무만 세는 사람"은 결코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없습니다.
- '성공의 조건'을 요구하나요, '실패의 핑계'를 만드나요? "성공하려면 OOO이 필요합니다"라는 말은 주도성의 상징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 "OOO이 충족되지 않으면, 실패해도 내 책임이 아니다"라는 교묘한 '책임회피 안전장치'를 설치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우리는 완벽한 조건에서만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불완전한 조건 속에서도 답을 찾는 동료를 원합니다.
- 논리가 막히면 '관행' 뒤에 숨나요? "데이터가 없다"는 사실에 동의하고도, "원래 다 그렇다"는 식의 비논리적 주장을 펼치는 모습. 이는 문제 해결보다 자기주장 관철이 우선이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합리적인 대화의 규칙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사람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결론: 최고의 인재는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증명'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받을 것에 대한 당위성을 주장하기보다, 자신이 기여할 가치를 먼저 보여주는 사람. 협상 테이블에서조차 회사의 입장을 이해하고 '전체적인 균형점'을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우리가 월요일 아침, 웃으며 함께 커피 한잔하고 싶은 '진정한 프로페셔널'이자 '믿음직한 동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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