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에 적었던 글 원문을 블로그에도 게시합니다.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어린 시절 겪은 일이다.
대수(algebra)를 어려워해서 과외를 받던 사촌 형이 문제 하나를 붙들고 x가 어떻고 하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뭘 하는 거냐고 물으니, 2x + 7 = 15에서 x를 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파인만이 말했다.
"4잖아."
형의 대답이 걸작이다.
"맞아. 근데 너는 그걸 산수로 구했잖아. 대수로 구해야지."
파인만은 이 일화를 이렇게 정리한다.
사촌 형은 끝내 대수를 하지 못했는데, 자기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대수에서 중요한 것은 x값을 알아내는 것이 전부이며, 그 값을 어떤 경로로 구하든 아무 차이가 없다. 애초에 '산수로 푼다', '대수로 푼다' 같은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수로 풀어야 한다'는 규칙 자체가, 학교가 만들어 낸 엉터리 기준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는 왜 그런 기준을 제시했을까?
파인만의 답은 간단하다. 그래야만 대수를 배워야 하는 아이들 모두가 그 과목을 pass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변에서 7을 빼라, 곱해진 숫자가 있으면 그 숫자로 양변을 나눠라.'
이렇게 규칙을 만들어 두면, 아이들은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몰라도 공식만 따라 하면 답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본 파인만 인터뷰 영상 속 이야기였다. 썸네일에는 이렇게 박혀 있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은 엉터리죠."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도 종종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와 학교 공부 이야기를 종종 나눈다. 아이가 어떤 수학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거나 풀이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면, 나는 내 나름대로 최대한 말이 되게 설명해 준다. 그런데 내가 설명한 방식과, 아이가 "이런 유형은 이렇게 푸는 거라고 학교에서 배웠어요"라며 들려주는 방식을 나란히 놓고 보면, 차이가 나는 경우가 꽤 있다.
오해가 없도록 분명히 해 두자. 학교나 학원이 알려주는 방식에 오류가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오류가 있었다면 진작 난리가 났을테니까. 차이는 맞고 틀림이 아니라, 문제를 '푸는 행위' 자체에 있다.
학교와 학원의 방식은 이렇다. 문제 푸는 방법을 유형별로 정형화해 두고, 아이들에게 숙지시킨다. 그 유형의 문제가 나오면, 숙지한 방법을 꺼내어 적용하게 한다.
내가 알려주는 방식은 이렇다. 먼저 알아내야 하는 값, 즉 문제가 무엇을 물어보는지 정확히 인식한다. 다음으로 그 답에 도달하려면 어떤 판단과 계산이 필요한지 스스로 생각해 낸다. 마지막으로 그 판단과 계산을 실제로 수행하고 답을 낸다.
두 방식의 결정적인 차이는 하나다.
풀고 있는 바로 그 순간, 아이의 머릿속에서 논리가 돌아가고 있는가.
물론 학교식 풀이법도 처음 만들어질 때는 당연히 논리와 합리가 뒷받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그 방식을 '적용'해서 푸는 순간, 아이의 머릿속에 그 논리가 그려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방식을 만든 사람의 머릿속에는 논리가 있었지만, 방식을 사용하는 아이의 머릿속에는 풀이의 절차(방법)만 남는다.
파인만의 사촌 형이 정확히 이 상태였다.
자식이 학교에서 뒤처지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다.
뒤처짐의 기준은 시험 성적이고, 조금이라도 나은 성적을 뽑아내려고 학원까지 보내는 경우가 많다. 안타까운 것은, 아이들이 치르는 시험이 정확히 저 학교식 방식에 최적화된 시험이라는 점이다. 배운 풀이 방식을 머릿속에 잘 넣어 두었다가, 문제 앞에서 정확히 재현하면 고득점이 나오는 구조다.
한 술 더 떠서, '외우기만 하는 것은 진짜 공부가 아니다'라는 미명 아래, 요즘 시험은 풀이 과정까지 알아야 점수를 준다. 그런데 그 '제대로'의 기준이 무엇인가 하면, 학교와 학원이 알려준 풀이 방식을 답을 낼 때 잘 사용했는가이다. 답은 맞았는데 '지정된 방식'이 아니라서 인정받지 못하는 구조.
"너는 산수로 구했잖아. 대수로 구해야지."
사촌 형의 그 말이, 채점 기준이라는 형태로 규격화된 셈이다.
예전에는 답만 외우게 했다면, 이제는 풀이 과정까지 외우게 만든 것이다. 단순히 답이 맞냐만 확인하는 방식에서 과정까지 확인하는 방식으로 바뀌면, 언뜻 '생각을 하며 푸는 지'를 중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속기 딱 좋은 지점이다. 암기에서 벗어나자며 도입한 장치가, 오히려 외워야 할 범위를 '답'에서 '풀이 과정'으로까지 넓혀 놓았다.
이런 구조를 들여다보는 학부모는 별로 없다.
그 상태에서 너도나도 자식 성적을 올리겠다고 학교로도 모자라 학원에 보내고, 문제집 더 풀게 하고, 선행학습을 시킨다. 나는 이것이 시간 낭비, 돈 낭비, 에너지 낭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변에서 "공부 잘하셨다면서요. 우리 애가 공부를 너무 안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는 질문을 하면, 이렇게 대답한다.
"공부요? 그렇게까지 필요는 없어요."
돌아오는 반응은 둘 중 하나다.
"배울 만큼 배워 본 사람이 배부른 소리 한다."
"깨어있는 척, 멋있어 보이려고 하는 소리다."
'필요 없다'는 말은 공부라는 행위 자체가 무가치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지금 학교와 학원이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 '공부하는 척'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학부모는 그 방식이 어떤 것인지 관심도 없고 들여다볼 줄도 모른 채, '점수 잘 나오는 게 아이의 미래를 위한 일이지'라는 착각과 관성에 빠져 공부, 공부, 공부 노래를 부르고 있다.
본질을 잃은 것에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으니, 필요 없다고, 낭비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학교식 방식을 무시하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파인만이 했던 얘기를,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풀어서 들려준다.
"학교나 학원에서 알려준 방식은, 내용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방식이 전혀 아니야. 그건, 누구라도 그 문제를 풀어낼 수 있게 만들어 주려고 누군가 생각해 낸 '쉬운 방법'이고, 넌 그 쉬운 방법을 배우고 있는 거야.
너도 아빠의 설명을 들으면서 느꼈겠지만, 아빠가 알려주는 방식은 쉽지 않아. 아무래도, 소화해 낼 수 있는 사람은 적을테고. 그런데 똘똘한 학생부터 그렇지 않은 학생까지 전부 가르쳐 내야 하는 학교라면, 어떤 방식을 택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하겠니? 당연히 '문제 푸는 능력'을 한 명이라도 더 많이 갖게 만드는 쪽을 고르지 않겠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야. 실제 시험 문제도 그 기준으로 나오니까, 점수를 얻으려면 학교에서 알려주는 내용도 잘 알고 있어야 해. 다만 그 방식만 알고 있으면, 시험 점수는 잘 나올지 몰라도, 배우는 내용을 진짜 네 것으로 만들기는 어려울 거야."
요지는 이거다.
학교가 그렇게 가르치는 데에는, 수준이 제각각인 학생들을 모두 통과시켜야 하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풀이 방식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 방식'만' 알고 있을 때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사실, 파인만의 영상을 보고 되게 반가웠다. '맞는 말'이라는 것은 누가 말했느냐가 아니라 '그 자체가 타당하냐'로만 평가받는 것이 논리적으로 옳겠으나, 세상에선 그 법칙이 그다지 잘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제 생각에는요"로 시작하는 말과 "파인만이 이런 말을 했는데요"로 시작하는 말은, 내용이 같아도 전혀 다른 무게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이 글도,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파인만의 이야기로 시작했던 것이고.
(끝)
'생각 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의견 차이가 아니라 사회악입니다 (부제 : 공동체를 갉아먹는 인지 왜곡) (0) | 2026.06.28 |
|---|---|
| 글을 더 친절하게 쓰지 않은 것이 잘못인가? (0) | 2026.06.28 |
| 법적 무죄 vs 인간적 당당함 (feat. 블랙박스 과실비율 논쟁) (0) | 2026.06.12 |
| 사진관 노쇼 논란을 AI에게 물어보고 느낀 것 (0) | 2026.06.12 |
| 말투는 정중했지만, 구조는 이기적이었다 (0) | 2026.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