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익숙한 것을 선호한다. 선호한다는 말은 '다른 것보다 더 좋아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많이 보고 듣고 겪었던 것을 그렇지 않았던 것들보다 좋아한다는 얘기다. 합리적인 이유가 아닌, 익숙한 정도에 의한 선호이므로, '편애'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특성은 진화적 관점에서 당연한 결과다. 예를 들어 보자. 인류의 오랜 역사 동안, 항상 먹던 것만 먹어온 사람과 처음 보는 음식을 경계하지 않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많이 살아남았을까? 익숙한 지역에서 평생을 머무는 사람과 새로운 곳을 탐험하길 즐겨했던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많은 자손을 남겼을까? 익숙한 것을 선호하는 쪽이 더 오래, 더 많이 살아남았다. 그 결과, 인류는 익숙한 것을 선호하는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인간의 유전자 속에 각인된 '익숙함에 대한 선호'는 관련 없는 영역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책에 대한 선호 양상이 대표적인 예시다.
랜덤하게 분류된 두 집단에게 상반된 생소한 내용을 얘기해 준 뒤, 그 내용이 현재의 정책이라 알려준다. 그리고 정책에 대한 선호 여부를 조사하였다. 두 집단 모두, 현재 정책이라고 알게된 내용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내겐 생소하지만 이 사회에겐 친숙한 현재의 정책, 이유는 모르겠지만 좋다고 느껴진다. (선호)
사실, 정책의 친숙 여부 따위는 생존률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정책 내용 자체가 개인 또는 특정 집단에게 유리한지로 판단해야 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친숙한 정책을 나은 정책이라고 믿고 지지한다.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익숙한 것에 대한 편애'의 부작용이다.
그런데,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이상함이 느껴졌다. 현재 정책을 선호하는 이유가 '친숙해서'가 아닌 것 같았다. 그보다는 '합리적이니 정책으로 채택 되었겠지' 같은 추론의 결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률상 내 개인 판단보다는 책 속 내용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몇 번을 다시 생각해봐도 친숙함에 의한 결과는 아닌 것 같다.
'개인이 아닌 집단에게 친숙한 내용'이 개인의 선호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게 비약 같다. 인류 역사 동안 그런 경우가 있었을까? 예를 들면, 내겐 생소하더라도 동료들에게 익숙한 음식이라면 먹었던 사람 vs 나는 물론 동료들에게까지 생소해도 경계하지 않는 사람. 이 차이가 후대에게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을까? 이렇게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 질문해보니, 그럴 것 같단 생각도 한편으론 든다.
정답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봤던 책의 내용이 애매하다는 점 만큼은 확실하다. '친숙함'을 어느 영역까지 적용할 것인지 애매하게 내버려 둔 채 집필되었기 때문이다.
그냥 읽기만 했었다면 모르고 넘어갔을 내용이다. 하지만, 이렇게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알 수 있었다. 글쓰기를 하면 보다 깊고 넓게 생각할 기회가 만들어짐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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