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식 정리 정돈

쌍용 체어맨: 대한민국 럭셔리 세단의 역사

대왕날치 2025. 6. 26. 17:51

쌍용자동차 체어맨(Chairman)은 1997년 첫 출시되어 2018년까지 생산된 대한민국 대표 고급 대형 세단이다. 체어맨은 출시 당시 국내 유일의 후륜구동 고급 세단으로서 국산차 최초 5단 자동변속기, 터치스크린 내비게이션 등 최고 수준의 사양을 자랑하며 등장했다. 한때 국내 대형 세단 판매 1위를 기록하며 국산 고급차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대한민국 0.1% 부유층과 VIP를 상징하는 플래그십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아래에서는 체어맨의 세대별 모델 변화와 주요 특징을 출시부터 단종까지 연대순으로 정리한다. 특히 1세대와 2세대가 병행 판매되던 이례적인 시기의 배경, 경쟁 차종 대비 특징, 시장의 반응과 이후 쌍용차의 행보까지 폭넓게 다루어 본다.

1세대 체어맨 (W100, 1997~2014)

초대 체어맨 (1997~2003): 탄생과 초기 성공

1997년 10월 14일, 쌍용자동차는 창사 이래 첫 승용차이자 플래그십 세단인 체어맨을 선보였다. 당시 쌍용은 메르세데스-벤츠와 기술 제휴로 개발비 약 5천억원을 투입해 체어맨을 개발했는데, 벤츠 E클래스(W124) 플랫폼을 활용하고 벤츠 수석 디자이너가 참여한 덕분에 전체적인 외관과 설계가 벤츠 세단과 유사했다. 실제로 둥근 헤드램프와 중후한 차체 라인은 벤츠 S클래스(W140)와 흡사하여, 벤츠 측에서 체어맨 디자인 변경과 해외 수출 자제를 요청할 정도였다. 이러한 이슈는 있었지만,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오히려 '국산 벤츠'로 불리며 화제를 모았다.

초기 체어맨은 길이 5미터가 넘는 당대 최대 차체(리무진 모델 5.3m)를 자랑했고, 공기저항계수 0.29의 세련된 유럽형 곡선 디자인을 적용하여 보수적인 국내 고급차 디자인에 신선함을 주었다. 실내에는 국산 최초 5단 자동변속기디지털 트립 컴퓨터를 장비하고, 터치스크린 방식 멀티비전 내비게이션 등 첨단 편의사양을 갖춰 당시로선 "최초" 수식어가 많았다. 최고급형에는 직렬 6기통 3.2L 가솔린 엔진(220마력)을 탑재해 성능을 확보했고, 연비 향상을 통해 대형차 최초로 1등급 연비도 획득했다. 이러한 기술력과 고급스러움 덕분에 체어맨은 출시 직후 현대 다이너스티 등 경쟁차를 제치고 국산 대형 세단 판매 1위에 올라섰으며, 수입 고급차 판매에도 영향을 줄 만큼 돌풍을 일으켰다. 실제 1999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방한 시 의전 차량으로 채택되어 국빈 의전차로 활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출시 직후 외환위기(IMF) 사태로 쌍용그룹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1998년 대우자동차가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잠시 "대우 체어맨"으로 판매되기도 했는데, 대우의 패밀리룩인 3분할 그릴을 적용한 체어맨은 본래 디자인과 어울리지 않아 혹평을 받았다. 2000년 쌍용차가 다시 분리된 후에는 원래의 쌍용 엠블럼 그릴로 복귀하여 디자인 혼선을 정리했다. 이처럼 우여곡절 속에서도 체어맨은 SUV 전문 업체였던 쌍용을 단번에 고급 세단 제조사로 변모시킨 전략 차종이 되었다. 당시 현대 다이너스티, 기아 엔터프라이즈 등 기존 국산 세단보다 앞선 기술과 럭셔리함으로 국내 최고급차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뉴 체어맨 (2003~2008): 디자인 성숙과 기술 업그레이드

2003년 페이스리프트된 1세대  뉴 체어맨  (사진은 모터쇼 전시차량). 전후면 디자인을 다듬고 실내 계기판을 디지털화하는 등 현대적 보수미를 더한 모습이다.

 

출시 6년 만인 2003년 9월 25일, 체어맨은 한 차례 대대적인 페이스리프트 모델 "뉴 체어맨"으로 거듭났다. 기존 둥글고 역동적이던 익스테리어에 크롬 장식을 더해 한층 보수적이고 중후한 멋을 살렸고, 아날로그 계기판을 전자식 디지털 클러스터로 변경하는 등 인테리어 고급감을 높였다. 또한 국산차 최초로 DVD 지도를 사용하는 내비게이션을 갖춰 기술적으로 진일보하였다. 뉴 체어맨부터는 구형 4단 자동변속기를 완전히 퇴출하고 전 트림에 5단 자동만 적용하여 주행 성능과 효율을 개선하였다.

편의·안전 사양도 강화되어, 2005년형에는 타이어 공기압 경보장치(TPMS), 전자제어 에어 서스펜션(EAS), 전자식 파킹브레이크(EPB) 등을 추가한 "뉴 테크" 트림이 출시되었다. 2006년에는 판매 부진을 겪던 2.3L 4기통 엔진 모델(일명 400S 트림)을 단종시키는 대신, 최고급형으로 3.6L 직렬6기통 엔진의 700S 트림을 새로 투입해 동력 성능을 한층 끌어올렸다. 이로써 1세대 체어맨의 엔진 라인업은 2.8L(500S), 3.2L(600S), 3.6L(700S)로 재편되었다. 2006년 중반에는 휠 디자인과 엠블럼을 손보고 사이드 미러에 LED 사이드리피터를 넣으며 차선이탈경보(LDWS) 같은 최신 안전 기술도 적용하는 등 지속적으로 상품성을 끌어올렸다.

이 시기 체어맨은 현대 에쿠스(1세대), 기아 오피러스(2003년 출시), GM대우 베리타스/스테이츠맨(호주산 수입) 등 신흥 경쟁자들과도 치열하게 경쟁했다. 뉴 체어맨은 부분변경을 거치며 디자인 완성도가 높아졌고 풍부한 편의사양을 내세워, 국내 대형차 시장에서 꾸준한 수요를 이어갔다. 다만 차체 기본 골격과 파워트레인은 여전히 90년대 설계에 기반하다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완전 신차 대비 한계도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풀모델체인지를 쌍용도 계획하고 있었지만, 당시는 쌍용차의 재정 악화로 개발이 지연되던 시기였다. 결국 1세대 체어맨은 큰 변화 없이 이 모습 그대로 2000년대 후반까지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체어맨 H (2008~2011): 1세대의 생명 연장과 새로운 포지셔닝

2008년 1월, 마침내 체어맨의 완전 신형 2세대 모델이 출시되기에 이르렀다. 쌍용은 새로운 2세대에 "체어맨 W"라는 이름을 붙였고, 기존 1세대 모델은 단종 대신 이름을 "체어맨 H"로 바꾸어 병행 판매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H는 'High Owner(하이 오너)'의 약자였는데, 명목상으로는 체어맨 H가 자기 운전을 즐기는 오너들을 위한 클래식 세단이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실제 배경은 새 모델 출시와 함께 구형을 단종시키려 했으나, 회사의 자금난으로 1세대를 즉시 대체할 마땅한 신차를 개발하지 못한 탓이 컸다. 이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구형 뉴 체어맨의 각종 편의·안전사양을 대폭 축소하여 가격을 낮춘 뒤, 보급형 대형차로 포지셔닝한 것이 바로 체어맨 H였다. 다시 말해 체어맨 H는 체어맨 W와 양쪽 끝단을 받치는 투-트랙 전략이었다. 체어맨 W가 최상급 럭셔리를 지향하며 에쿠스급으로 올라선 반면, 체어맨 H는 가격 인하로 한 체급 낮춰 현대 제네시스나 기아 오피러스 등과 경쟁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이 전략은 한편으로 체어맨 브랜드 가치의 희석을 불러왔다. 최고급 모델이었던 뉴 체어맨을 구매했던 기존 고객 입장에선, 자신들의 차가 갑자기 "H"로 이름만 바뀌어 값싼 트림으로 전락하고 각종 사양까지 삭제된 것에 반발하기도 했다. 또한 1990년대 플랫폼에 의존한 체어맨 H는 2008년 이후 쏟아져 나온 후발 대형차들에 비해 상품성이 떨어졌고, 젊어진 소비자 취향을 따라가지 못했다. 가격은 저렴해졌지만 디자인과 기술이 구식이라는 평가가 늘면서 판매 부진이 심화되었고, 체어맨이라는 이름의 명성에도 흠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체어맨 H는 1세대의 수명을 몇 년 연장하는 역할에 그쳤고, 시장 주도권은 신세대 대형 세단들에게 빠르게 넘어가게 된다.

체어맨 H 뉴 클래식 (2011~2014): 마지막 개선과 1세대의 퇴장

2011년 5월, 쌍용은 침체된 체어맨 H의 상품성 보완을 위해 또 한 번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체어맨 H 뉴 클래식"을 선보였다. 같은 해 서울모터쇼에서 첫 공개된 뉴 클래식은 1세대 체어맨의 최종 마이너 체인지 버전으로, 내·외장 디자인에 대대적인 손질이 가해졌다. 전면은 하이빔·로우빔 일체형 프로젝터 헤드램프에 LED 라이트 가이드를 삽입하여 트렌드에 맞게 세련되게 바뀌었고, 라디에이터 그릴은 굵은 세로바 디자인으로 변경되었다. 범퍼와 안개등 형상도 수정되어 보다 현대적 인상을 주었으며, 차명에 걸맞게 'New Classic' 엠블럼이 추가되었다. 실내 또한 대시보드를 새 디자인으로 교체하고, 계기판을 3.5인치 LCD가 포함된 슈퍼비전 클러스터로 개선하는 등 체어맨 W와 유사한 구성을 적용하여 구형 티를 벗고자 했다. 이 밖에 USB/AUX 단자와 파워아울렛 추가, 앞좌석 통풍시트 적용, 뒷좌석 중앙 3점식 벨트 장착, 브레이크 성능 업그레이드,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Harman社) 탑재 등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사양 개선이 이뤄졌다.

2011년 출시된  체어맨 H 뉴 클래식 . 1세대 체어맨의 마지막 페이스리프트 버전으로, LED 주간등이 포함된 헤드램프와 세로형 라디에이터 그릴 등을 적용해 한층 현대적 이미지를 갖추었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미 체어맨 H 자체가 구형 플랫폼 한계에 직면한 상황에서 부분변경만으로는 근본적 경쟁력 개선에 역부족이었다. 신차 효과는 미미했고 판매 부진은 지속되었다. 결국 체어맨 H 뉴 클래식은 출시 3년여 만인 2014년 말 생산이 중단되었고, 2014년 12월 31일부로 1세대 체어맨은 완전히 단종되었다. 1997년에 시작된 1세대 체어맨은 총 18년간 여러 차례의 페이스리프트로 명맥을 이어오다 마침내 역사 속으로 퇴장한 것이다. 비록 "우려먹기"식 연명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체어맨 1세대는 대한민국 대형 세단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모델임은 분명하다. 국산차로서 최고급 세단 시장에 도전하여 기술적 성과와 경험을 남겼고, 이후 현대 에쿠스나 제네시스가 등장하는 등 국내 럭셔리 카 시장을 개척·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도 있다.

2세대 체어맨 W (W200, 2008~2018)

체어맨 W (2008~2011): 새로운 플래그십의 등장

2008년 2월, 쌍용은 완전히 새롭게 개발한 2세대 체어맨을 출시했다. 모델명은 "체어맨 W"로, 여기서 W는 "World Class"를 의미하며 한층 글로벌 지향의 최고급 세단임을 강조했다. 신차 발표에 앞서 2007 서울모터쇼에서 "WZ" 컨셉트카로 디자인을 선공개하기도 했는데, 양산형은 컨셉트의 디자인 요소를 살려 2008년 2월 27일 공식 출시되었다. 체어맨 W는 차체 길이 5.11m, 휠베이스 2.97m (리무진은 3.27m)에 달하는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며, 기존 1세대보다 차원이 다른 실내공간과 위엄있는 스타일을 갖췄다. 파워트레인 면에서도 국산 최초의 V8 5.0리터 가솔린 엔진을 탑재하여 최고출력 306마력, 토크 45kg.m의 성능을 발휘했고, 메르세데스-벤츠제 7단 자동변속기를 맞물려 부드러운 주행성능을 구현했다. 안전 사양으로는 국산 최초로 운전석 무릎 에어백을 포함해 총 10개의 에어백을 장착하여 동급 최다 에어백을 달성했다.

구동계 또한 돋보이는 혁신이 있었는데, 기본 후륜구동이던 것을 일부 모델에 4륜구동 시스템(4-Tronic)을 추가한 것이다. 직렬 6기통 3.6L 엔진 모델에 국산 최초 상시 4WD를 적용하여 험로 주파성과 안정감을 높였으며, 이 4-Tronic 시스템은 추후 고객 요구에 따라 확대 적용되었다. 초기 체어맨 W는 3.6L 직렬 6기통 엔진(250마력)5.0L V8 엔진(306마력) 두 가지로 출발했고, 2008년 8월에 3.2L 6기통(225마력) 엔진이 추가되어 선택 폭을 넓혔다. 모든 엔진은 메르세데스 벤츠로부터 기술을 제공받은 것으로, 7단 자동변속기와 조합되어 성능과 연비를 균형있게 제공했다. 한편 2008년 말에는 인테리어를 베이지/그레이 등으로 다양화한 그레이 에디션 트림을 선보여 고급스러움을 강화하기도 했다.

체어맨 W의 등장은 쌍용이 전통적 럭셔리 세단 시장에 정면 승부를 건 의미였다. 현대 에쿠스(1세대)와 제네시스 BH, 수입 S클래스/BMW 7시리즈 등을 직접 겨냥하여, 체어맨 W는 가격과 사양 모두 국내 최고 수준으로 책정되었다. 뒷좌석 VIP 의전을 중시해 리무진(스트레치드) 모델도 함께 출시되었는데, B필러를 증설한 리무진은 전장 5.41m에 이르는 거대한 차체로 기업 회장 차량이나 의전용으로 어필했다. 실내에는 전동 리클라이닝 시트, 뒷좌석 냉장고, 전용 오디오 컨트롤 등 기품있는 편의장비를 넣어 국산차 최고급의 위상을 보여주었다. 다만 시장의 반응은 기대에 조금 미치지 못했다. 체어맨 W 자체의 완성도는 높았으나, 이미 현대/기아 등 경쟁사들이 브랜드 파워를 앞세워 에쿠스나 K9 같은 후속모델을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었고, 수입차 선호도도 높아지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쌍용차의 기업 불안정성(2009년 법정관리 등)도 겹치며 체어맨 W의 판매는 비교적 소수에 그쳤다. 그럼에도 쌍용은 지속적인 개선으로 경쟁력 보완에 나섰다.

뉴 체어맨 W (2011~2018): 개선과 변화, 그리고 조용한 종료

2011년 7월 6일, 체어맨 W도 출시 3년만에 페이스리프트 "뉴 체어맨 W"를 내놓았다. 외관은 기존의 중후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세부적으로 현대적 감각을 더했다. 예를 들어 HID 프로젝션 헤드램프에 자동 높이조절 기능을 넣고, LED 턴시그널 램프를 적용하여 시인성을 높였다. 앞범퍼는 일체형 듀얼 머플러 팁이 더해져 스포티하면서도 세련된 인상을 주었고, 계기판 트립 컴퓨터 화면에 차량 이미지를 넣어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구현했다. 창문은 이중 접합 차음유리를 채택해 정숙성을 향상시키는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졌다. 또한 고객 요구를 반영하여 3.2L 모델에도 4륜구동(4-Tronic)을 선택 가능하도록 해, 이제 6기통 전 트림에서 AWD를 고를 수 있게 되었다.

2013년에는 초대형 럭셔리 세단 수요를 겨냥해 최상위 리무진 트림 "서미트(Summit)"를 선보였다. 서미트는 2열 좌석을 독립형 2인승으로 꾸미고, 스코틀랜드 브릿지 오브 웨이어(Bridge of Weir)사의 최고급 가죽 시트를 적용한 초호화 버전이었다. 동시에 일반형 세단에는 고급 내장재와 편의사양을 강조한 바우 에디션(Vau Edition)이라는 특별사양도 추가했다. 2014년형 뉴 체어맨 W(같은 해 6월 출시)부터는 전방 안전카메라(ADAS)를 전 트림 기본적용하고, 앞좌석 통풍시트와 세로형 라디에이터 그릴을 모든 모델에 확대 적용하여 상품성을 높였다. 신규 디자인의 19인치 하이퍼 실버 휠과 다이아몬드 커팅 휠도 도입되어 외관 고급감을 끌어올렸다. 2014년 하반기에는 국내 리무진 최초로 4륜구동 리무진 모델(CW700L)을 내놓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처럼 쌍용은 체어맨 W를 꾸준히 손보고 니치 수요까지 공략하며 생명력을 연장했다.

2016년, 체어맨 W는 마지막 변신을 시도한다. 쌍용차는 체어맨 W의 브랜드 이미지를 쇄신하고자 "체어맨 W 카이저(Kaiser)" 시리즈를 출시했다. '카이저'는 독일어로 황제를 뜻하는 단어로, 체어맨을 황제의 품격으로 격상시킨다는 의도가 담겼다. 실제로 차량 엠블럼도 기존 쌍용 로고 대신 황제의 상징인 독수리 문양의 신규 엠블럼으로 교체되었다. 내장도 변화하여 시트와 도어트림에 퀼팅 패턴 가죽을 적용하고, 대시보드에는 블랙 글로시 우드그레인과 골드 몰딩을 더해 한층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편의사양으로 전동식 트렁크(세이프티 파워 트렁크)와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ACC)을 적용하는 등, 경쟁 신차들에 뒤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선책에도 불구하고, 대형 세단 시장에서 체어맨의 입지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국내 소비자 취향이 저유가 기조 속에 SUV와 픽업트럭 쪽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법인 리스 시장에서도 제네시스 EQ900(G90), 기아 K9 등 신형 국산 세단이나 메르세데스 S클래스, BMW 7시리즈, Audi A8 등 수입차들이 강세를 보였다. 체어맨 W의 판매량은 매년 저조하여 2017년에는 사실상 주문생산만 진행되었고(일반 판매 중단), 2017년 9월에는 V8 5000 모델도 주문제작으로 전환하며 사실상 생산을 접는 수순에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2017년 12월 체어맨 W의 양산이 완전히 중단되었고, 이듬해 남은 재고를 소진한 뒤 2018년 3월 체어맨 시리즈는 공식적으로 단종되었다. 이로써 1997년부터 21년간 이어져온 쌍용 체어맨의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된다. 쌍용자동차는 이후 차기 세단 후속 없이 SUV 전문 브랜드로 방향 전환을 선언하며, 체어맨 단종 후에는 대형 SUV인 G4 렉스턴 등이 플래그십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체어맨의 의의와 시장 평가, 그리고 그 후

체어맨이 남긴 20여 년의 족적은 국산 자동차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국산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메르세데스-벤츠와 협업해 세계 수준의 대형 세단을 만들었고, 국내 고급차 소비자들에게 "수입차 대안"을 제시하였다. 출시 초기 체어맨의 성공으로 현대차도 에쿠스 개발에 박차를 가했으며, 이후 제네시스 브랜드 탄생 등 국내 럭셔리 세단 시장 활성화에 촉매가 되었다는 평가가 있다.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1세대 체어맨의 메르세데스 혈통에 대한 향수가 존재하고, 초창기 체어맨 CM600S/CM700S 등의 번호명은 아직도 회자된다. 한때 체어맨은 재계 총수들의 의전차로 애용되어 "회장님 차"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다. 실제 차량명인 Chairman도 대기업 회장, VIP 계층을 타깃으로 한 작명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체어맨의 한계도 분명했다. 모델 교체 주기가 매우 길고 잦은 부분변경으로 연명하다 보니, 2010년대 들어 경쟁 신차 대비 기술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다. 예컨대 후반부 체어맨 H는 18년 된 플랫폼으로 버티다가 단종되어 "국산차 최장수 모델"이란 이야기도 나왔지만, 이는 역으로 신기술 반영이 더뎠다는 뜻이기도 했다. 게다가 쌍용차 회사 자체의 경영 부침(대우 인수, 상하이차 인수, 마힌드라 인수 등 반복된 주인 변경)으로 일관된 개발 투자가 어려웠고, 체어맨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키우지 못한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결과적으로 체어맨 W는 후속 없이 단종되어 쌍용은 세단 시장에서 철수하였고, 이후 2020년대 쌍용(현재 KG모빌리티)은 SUV와 전기차 라인업에 집중하고 있다.

그럼에도 쌍용 체어맨이 국내 자동차 산업에 남긴 의미는 작지 않다. 국산 브랜드로서 최고급 세단에 도전하여 얻은 기술과 경험은 훗날 다른 모델 개발에 자양분이 되었고,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여 고급차 수요를 끌어올렸다. 또한 체어맨을 통해 축적된 노하우로 쌍용은 이후 렉스턴 등 SUV에도 고급화를 접목할 수 있었다. 자동차 역사 애호가들은 체어맨을 두고 "대한민국에서 다시 나오기 힘든 클래식 대형 세단"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벤츠의 향취를 품었던 국산차로서, 그리고 대형 럭셔리 세단 시장의 숨은 공로자로서 체어맨의 이름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체어맨 연표 (Yearly Timeline)

체어맨 출시부터 단종까지의 주요 변화를 연도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연도 주요 사건 및 모델 변화 (체어맨 연혁)
1997년 쌍용 1세대 체어맨 출시 (W124 벤츠 플랫폼 기반, 직렬6 3.2L 등).
1998년 쌍용차 대우자동차에 인수 → 대우 체어맨 일시 판매 (3분할 그릴 적용).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방한 시 체어맨 의전차량으로 사용.
2000년 대우에서 쌍용 분리, 쌍용 엠블럼 복귀. 직렬4 2.3L CM400 보급형 트림 추가.
2003년 1세대 페이스리프트 뉴 체어맨 출시 (전후면 디자인 변경, DVD 내비, 5단 자동변속기 등).
2005년 뉴 체어맨 New Tech 트림 출시 (TPMS, 에어 서스펜션, EPB 최초 적용).
2006년 2.3L 모델 단종, 3.6L 700S 트림 추가 출시.
2008년 2세대 체어맨 W 출시 (V8 5.0L 엔진, 7단 미션, 4-Tronic AWD 등). 기존 1세대는 이름을 체어맨 H로 변경하여 병행 판매 개시.
2009년 체어맨 W에 3.2L 엔진 추가, Gray Edition 내장 색상 추가.
2011년 1세대 마지막 부분변경 체어맨 H 뉴 클래식 출시 (LED 등 현대화) → 2014년 단종. 2세대 페이스리프트 뉴 체어맨 W 출시 (HID 헤드램프, 편의사양 강화).
2013년 체어맨 W에 최고급 리무진 Summit 트림Vau 에디션 추가.
2014년 체어맨 H (1세대) 생산 종료. 체어맨 W 2015년형에 안전사양 확대 적용 (전방 카메라, 전트림 AWD 옵션 등).
2016년 체어맨 W 카이저 시리즈 출시 (엠블럼 교체, 내장 업그레이드).
2017년 체어맨 W 판매량 급감 → 7월부터 리무진 모델 주문생산 전환, 9월 V8 모델 주문생산 전환. 12월 체어맨 W 생산 중단 및 재고 처리.
2018년 체어맨 W 최종 단종 (3월, 후속 없이 종료).

체어맨은 위와 같은 여정을 통해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사에 한 시대를 풍미했다. 출시 당시부터 화려했던 등장, 그리고 점차 변해가는 시장 속에서의 분투와 최후의 단종에 이르기까지, 체어맨의 역사는 곧 한국형 럭셔리 세단의 도전과 영광, 그리고 한계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지금은 역사 속 이름이 되었지만, 쌍용 체어맨이 남긴 발자취와 의미는 국산 자동차 팬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참고 및 출처: 쌍용 체어맨 위키백과, CARISYOU 매거진 보도, 기타 자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