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차에는 3.6리터 자연흡기 V6 엔진이 올라가 있다. 탈 때마다 그 부드러운 회전감이 신기해서 무슨 기술이라도 들어있나 싶어 찾아보다가, 원래 V6는 태생적으로 박자가 절뚝거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절뚝거렸다니. 엔진이 무슨 다리를 저는 것도 아니고. 궁금해서 파고들기 시작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재미있는 원리가 숨어 있었다.
사이클은 720도다
출발점은 단순한 사실 하나다. 4행정 엔진은 흡입, 압축, 폭발, 배기 네 단계를 마치는 데 크랭크축이 두 바퀴를 돈다. 한 사이클이 360도가 아니라 720도라는 얘기다.
실린더가 6개라면, 가장 이상적인 그림은 720도 안에 6번의 폭발이 정확히 120도 간격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실린더가 8개라면 720÷8, 즉 90도 간격으로 8번이어야 한다. 이걸 균등점화라고 부른다. 폭발 간격이 고르면 진동과 소리가 고르고, 고르지 않으면 특유의 울퉁불퉁한 박자가 나온다.
그런데 세상에는 균등점화가 안 되는 채로 팔린 엔진들이 있었다. 1960~70년대 미국의 90도 V6들이다.
V8을 잘라서 V6를 만들다
당시 미국 제조사들은 90도 V8을 잘 만들고 있었다. 뱅크각 90도는 방금 말한 8기통의 요구 조건, 90도 간격과 아귀가 딱 맞는 숫자다. 그래서 90도 V8은 아무 보정 장치 없이도 완벽한 균등점화로 돌던 엔진이었다. 그러다 V6가 필요해지자, 새로 설계하는 대신 있던 V8에서 실린더 두 개를 들어내는 길을 택했다. 생산 라인도, 설계 자산도, 공작 기계도 전부 90도 뱅크각에 맞춰져 있었으니까.
결과는 90도-150도-90도-150도로 절뚝거리는 점화 간격이었다.
왜 하필 저런 숫자가 나오는가. 이걸 이해하려면 상사점이 언제 오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상사점의 기하학
피스톤이 실린더 맨 꼭대기, 그러니까 상사점에 도달하는 순간은 언제인가.
본격적으로 따지기 전에 용어 하나만 짚고 가자. 크랭크샤프트는 부품 전체의 이름이고, 그 안에서 부위마다 이름이 따로 있다. 축 중심선 위에 놓여 엔진 블록에 얹히는 매끈한 구간이 메인 저널, 중심에서 벗어난 자리에 달려 있어 커넥팅로드가 감아쥐는 짧은 원기둥이 크랭크핀, 둘을 잇는 판이 크랭크암이다. 피스톤의 힘은 커넥팅로드를 타고 이 크랭크핀에 전달되고, 크랭크핀이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덕분에 밀고 당기는 직선 운동이 회전으로 바뀐다.
크랭크축 중심을 a, 크랭크핀을 b, 피스톤 중심을 c라고 하자. 피스톤이 가장 높이 올라간 순간이란, a-b-c 세 점이 정확히 일직선에 놓이는 순간이다. 커넥팅로드가 크랭크핀을 최대한 밀어 올린 자세. 그 이상은 기하학적으로 존재할 수가 없다.
이제 V형 엔진을 보자. V형은 크랭크핀 하나를 양쪽 뱅크의 실린더 두 개가 나눠 쓴다. 핀이 왼쪽 실린더 축과 일직선이 된 뒤, 오른쪽 실린더 축과 일직선이 되려면 얼마나 더 돌아야 하는가. 정확히 두 실린더 축이 벌어진 각도, 즉 뱅크각만큼이다.
하나의 핀을 공유해 쓰는 두 실린더의 상사점 간격은 뱅크각으로 고정된다. 이게 전부다.
마법의 공식, 720 나누기 N
위의 두 가지를 합치면 공식이 하나 나온다. 실린더 수가 N일 때, 뱅크각이 720÷N도면 아무 보정 장치 없이도 균등점화가 공짜로 얻어진다.
V8은 720÷8=90도. V8과 90도 뱅크각이 천생연분인 이유다. V6는 720÷6=120도가 정답이고, 4기통은 720÷4=180도가 나오는데, 뱅크각이 180도라는 것은 곧 두 뱅크가 완전히 마주 보고 눕는 수평대향 엔진이다. 스바루 박서가 아무 보정 없이 고른 박자로 도는 이유가 이거다. V12는 720÷12=60도. 페라리와 람보르기니의 V12가 약속이나 한 듯 60도 뱅크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90도 V6의 문제도 명확해진다. 하나의 핀을 공유해 쓰는 두 실린더는 뱅크각 때문에 90도 간격으로 터지는데, 핀 3개는 서로 120도씩 떨어져 있다. 90과 120이 어긋난 만큼, 30도의 절뚝거림이 사이클 내내 반복되는 것이다.
핀을 쪼개다
해결책이 걸작이다.
하나였던 크랭크핀을 두 쪽으로 살짝 쪼갰다. 왼쪽 실린더용 핀과 오른쪽 실린더용 핀 사이에 30도의 오프셋을 넣은 것이다. 그러면 두 실린더의 점화 간격이 뱅크각 90도에 오프셋 30도를 더해 120도가 되고, 균등점화가 완성된다. 이걸 스플릿 핀이라고 부른다.
일반화하면 필요한 오프셋은 '120 빼기 뱅크각'이다. 60도 V6라면 60도를 쪼개야 한다. 요즘의 60도 V6들, 내 차의 엔진도 여기에 속하는데, 이들은 V8을 자른 역사가 아예 없는 백지 설계라서 이 오프셋이 처음부터 도면에 들어가 있다.
그렇다면 애초에 120도 뱅크각으로 만들면 될 일 아닌가, 싶을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하면 스플릿 핀도 필요 없다. 다만 뱅크각 120도짜리 V6는 엔진이 옆으로 너무 퍼져서 엔진룸에 넣기가 어렵다. V형으로 만드는 이유 자체가 엔진을 컴팩트하게 줄이려는 것인데, 120도는 그 이점을 거의 다 까먹는다. 진동 밸런스도 60도 쪽이 유리하다. 그래서 현실의 답은 '폭은 좁게 가져가고, 점화는 핀을 쪼개서 맞춘다'가 된 것이다.
직접 돌려보기
여기까지가 말로 할 수 있는 설명이다. 그런데 크랭크샤프트라는 물건은 말로만 들어서는 그림이 잘 안 그려진다. 그래서 직접 돌려볼 수 있는 3D 시뮬레이션을 만들었다.
위쪽 버튼으로 다섯 가지 시나리오를 오갈 수 있다. 기준이 되는 V8, V8에서 실린더만 뚝 잘라낸 가상 시나리오, 실제로 존재했던 무보정 90도 V6, 스플릿 핀 보정판, 그리고 백지 설계 60도 V6. 화면을 드래그하면 시점이 돌아간다. 축 방향 시점으로 보면 크랭크핀들이 시계판처럼 몇 도씩 벌어져 있는지가 제일 잘 보이고, 스플릿 핀 모드에서는 핀이 살짝 두 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까지 확인할 수 있다. 아래쪽 타임라인은 핀 하나당 축 하나씩을 배정해서, 각 폭발이 720도 중 어디에 놓이고 다음 폭발까지 몇 도가 비는지를 보여준다.
V8 → V6 크랭크샤프트 3D 비교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어요. 아래 버튼으로 원하는 시점을 골라보시고, 반투명한 실린더 보어 안에서 피스톤이 실제로 오르내리는 모습까지 확인해보세요.
정리
상사점의 타이밍은 순전히 각도의 문제다. 그래서 핀을 공유하는 두 실린더의 점화 간격은 뱅크각으로 고정되고, 뱅크각이 720÷N이면 균등점화가 공짜로 나오며, 아니라면 핀을 쪼개서 모자란 각도를 벌어야 한다.
90도 V6의 절뚝거림도, 스바루 박서의 고른 박자도, V12의 매끄러움도, 전부 이 한 줄의 기하학에서 나온다.
알고 나니 엔진 소리가 조금 다르게 들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