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날치 조부상
일요일 저녁 11시 5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치매가 조금 있긴 하셨지만, 전날까지만 해도 직접 식사를 하시는 등 건강에 별 이상은 없으셨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시더니 결국 하루를 넘기지 못하셨다. 자정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기에, 발인은 화요일이다.
그닥 실감이 안났다. 충분히 오래 사셨기 때문일까. 9년 전, 작은아버지가 젊은 나이로 돌아가셨을 때의 충격에 비하면 담담한 수준이었다.
연락을 받은 즉시 내려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졸음과의 사투를 벌일 것도 걱정이요, 내려가봐야 딱히 할 게 없을듯 해서 일단 자고 다음날 가기로 했다. 지난달 낳은 둘째 때문에 와이프는 집에 있어야 했고, 난 첫째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돌아가셨다는 표현을 모르는 첫째에겐 '왕할아버지가 죽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죽은게 뭐냐고 묻길래 하늘나라로 가서 볼 수 없는 거라 이야기해줬더니, 비행기타고 간거냐며....
점심 무렵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내려오면서 회사에 부고를 알렸더니, 화환과 일회용품을 보내주더라. 손님들께 음식 대접할 때 쓰는 컵, 그릇, 수저, 휴지 등, 매우 유용했다고 모두들 입을 모아 이야기하더라.
오후 3시에 입관식이 있었다. 수의를 입히고 면도를 해드리고 전문가 두 분이 붙어서 일사천리로 척척. 끝무렵에 가족들 모두 빙 둘러서서 마지막 모습 보는 시간이 있었다. 아버지께서 할아버지 얼굴을 매만지며 마지막으로 하시는 말씀.
아버지!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사랑합니다.
그 말을 들으니 얼마나 울컥하던지 ㅠㅠ
장례식장에서 5살짜리를 엄마 없이 컨트롤하는건 불가능할 듯 해서, 처가집에 맡겨놓기로 했다. 처가집에 데려다 주면서 장인어른께서 판매하신다던 약주들 사진을 찍어왔다. 여유가 되면 판매글을 올려봐야겠다.
못생긴 니로. 사촌 동생의 A6와 비교하니 정말 외모 대비가 극명하구나.
문제가 생겼다. 인원 예상을 잘못해서 밥과 국이 다 떨어졌다. 장례식장이 시골이라 광주로 주문을 넣으면 배달되기까지 두 시간이 걸린다는데, 바닥이 난 시점에서도 아직 40여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
하필 퇴근 시간이라 조문객들은 줄을 지어 들어오고, 밥이 없으니 식사 장소에서는 사람들이 안빠지고..
결국, 일부는 인사만 하고 되돌아가시거나, 안주만 드시고 가시기도 했다.
새벽이 되자 손님 두 팀 정도만 남고 다들 돌아가셨다. 근데 이 양반들이 꽤나 시끄럽게 떠들어서 옆집 사람들이 잠을 자기 힘들었는지 조금만 소리를 낮춰줄 수 있냐고 조심스럽게 부탁을 해 왔다. 화투를 치던 한 팀은 이후부터 쉬쉬하며 조용히 놀았지만, 잡담을 하던 다른 한팀은 오히려 불쾌해하며 계속 떠들었다.
사실, 어떤 한 양반의 굵고 우렁찬 목소리가 소음의 주 원인이었는데, 어딜 가나 이런 사람은 꼭 한 명씩 있다. 안그래도 큰 목소리로 유난히 힘주어 말하는.. 보통 그런 사람이 대체적으로 남 배려할 줄 모르고, 남 신경 안쓰는..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
두어시간 자고 일어나니, 목소리가 안나왔다. 일주일쯤 전부터 감기 기운이 있었는데, 무리를 하니 바로 악화가 되네. 이비인후과 가서 주사맞고 약도 타왔다. 상중에 병원 가면 홍어 냄새 때문에 간호사들이 인상쓴다던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아니면, 티를 안낸 것일지도. 받아온 약은 아버지와 나눠 먹었다.
조의금 내역은 컴퓨터로 정리했다. 당연히 엑셀 파일 형식이며, 구글 드라이브의 '스프레드시트'에 입력 및 저장.
아버지 구글 계정에 보기 권한을 드렸고, 내가 노트북으로 입력하는 내용을 핸드폰에서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걸 보고 놀라워하셨다. 합계, 평균치 등 통계라던가, 이름별/그룹별 정렬이 실시간으로 반영된다는 점도 구웃.
헌데, 고모부께서는 엑셀 파일을 메일이나 카톡으로 보내달라고..
구글 드라이브꺼 그냥 보시는게 훨씬 낫다고 여러 장점들 설명을 드려봤지만,
'그런 장점은 나한텐 필요 없다. 쓰지도 않을 기능인데 뭣하러...'
라고 하시며 한사코 올드 스타일을 고집하시더라는..
해보지도 않고 필요 있을지 없을지를 어떻게 아시나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이고 최선이다.
이런게 가장 무서운 마인드. 자기 자신을 틀 안에 가둬버리는...
발인. 장손인 내가 영정 사진을 들었다.
화장터에서.
관이 화로에 들어가는 순간 또 한번 눈물이.. ㅠㅠ
그렇게 할아버지는 한줌의 재가 되어 돌아오셨다.
관광버스 사업을 하시는 당숙님의 버스를 타고 선산으로 이동 중. 27인승짜리 리무진 버스. 편안한 좌석. 높고 넓게 탁트인 시야. 이래서 크고 높고 넓은 차에 열광할 수 밖에 없는거구나.
유골함은 선산에 모셨다.
아무리 럭셔리한 버스라도 디젤 엔진은 어쩔 수 없는 건가 보다. 버스에서 내려 자차를 타니 구름위를 걷는 기분이다. 전기로 갈 땐 조용한 니로도 엔진이 개입되면 진동이 조금 느껴지는 편인데, 한동안 진동이 거의 안느껴지더라는..
첫째를 데릴러 밤이 다 되어 처가집에 들렀다. 어제 오늘 이틀 간 아주 신나게 잘 놀았다고 한다. 말도 지지리도 안듣고.
잠시 앉아서 차를 한잔 마시는데도 어른들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다다다다다다다 뛰어다니며 얼굴에는 웃음이 끊이질 안더라. 그걸 보며, 문득 든 생각.
애들은 정말 매일같이 저렇게 놀아야 하는데..
우리 집은 아파트라 저렇게 노는 게 불가능하다. 운동 신경이 평균 이하라고만 생각했는데, 뛰어놀 기회가 없어서 발달을 못한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떻게든 대책을 세워야 겠다.
집에 올라오는 길에 오산에 사는 사촌동생을 태우고 왔다. 나랑 딱 10살 차이 나는 동생. 오는 내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왔다.
말수가 적은 편인 내가 무려 세 시간 가까이 계속 이야기를 하다니. 진심 놀라웠다. 나도 이럴 수가 있구나.
동생을 내려주고 다시 50분 정도 달려 집에 도착.
그리고 기절.